鳳凰37會 中國 云南省 (昆明/石林/九香洞窟) 3박5일 旅行
☛, 日時:2013년03월07일~03월11일, 주간여행사: (주)온라인투어(02-3705-8131)
★.곤명현지여행사 가이드 김 성 엽(연변 출신 80년생)경력10년 곤명(昆明) 현지 가이드3년
여행비용:1인당804,000원(항공권 전 일정,(2인1실)식사, 전용차량, 가이드, 입장료, 여행자보험, 기사, 가이드 팁,1회 발 맛사지.
숙박 호텔: 云南 금화 국제 주점/云南省 昆明市 北京路96号 / TEL:0871-3543355/http//:ynjihua-hotel.com
旅行者名單:seo young youl+hong seok hwang=2103 / kim jae ok +lee ok ja=2104
03월07일 목요일 날씨 흐림(여행 첫날)
개인택시를 12시50분에 콜 하여 광주 종합버스 터미널에 도착 한 것은 13시15분 경이였다. 13시 50분에 이곳 광주에서 출발하는 인천 공항 행 우등고속 버스표 9명분을 예약해야하는 것은 19시 까지 도착해달라는 일정도 맞추기 위함이며 우등고속의 막차이며 다음 차는 심야우등으로 요금의 편차도 문제 가되어 1개월 전에 9명분을 예약 했는데 3월5일부로 1300원이 인상된 편도 32,300원이 되 버려 일찍 구입한 보람 속에 출발시간 10분전에 9명 전원이 차질 없이 설래 이는 마음으로 공항버스에 탑승 했고 13시50분 정각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대천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달리는 버스가 공항 근처를 다다를 무렵 창밖에는 온통 안개가 시야를 가릴 뿐 공황활주로 유도등 불빛이 인천 공항에 다 왔음을 알 때는 버스는 3층 게이트 앞에서 탑승한 손님을 하차하여 여행 가방까지를 챙겨 공항 3층 청사로 들어가 전 회원 33명이 도착 한 시간은 20시30분 경이였고 온라인투어 의 직원의 인원 점검 후 3층 수화물 탁송 카운터에서 여행 가방들을 탁송시키고 가벼운 마음들이 술렁임 으로 변 할 때는 중국에서 오는 동방항공MU2004 기가 인천공항의 안개 때문에 착륙을 하지 못하고 끝내는 김포공항으로 착륙한 탓에 내일 아침에야 시간도 확정되지 않은 체 지연된다는 것이다. 몇몇 회원들은 취소해버리고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체여행 은 비자 발급이나 모든 것이 전체가 취소는 있을 수 있지만 한두 명의 취소는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불란 과 소란은 늦은 시간과 이곳 인천공항 주변 여건상 공항순환버스 다섯 정거장에 에 위치한 몇 채의 건물이 있는 신도시 대형 찜질방에 신세를 지게 되는 회원들의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여행 첫날의 시간들은 불편함 속에 묻혀갔었다.
03월08일 금요일 날씨 구름(여행 둘째 날)
다수의 여행객이 똑같은 불편 속에 아침여명을 가르는6시경 정식식당도 아닌 찜질방에서 시켜먹는 조반은 서로가 감내해야할 불편 속에 6시40분 출발하는 순환버스에 우리 일행은 탑승하여 인천공항 출국장에 도착 한 것은 7시경 이였다. 곤명행비행기 출발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09시20분 출발 소식에 다소는 간밤의 피로도 잊은 채 출국을 기다리는데 주간여행사 직원은 누구하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가장 애타는 총무 영렬친구의 당황 속에 기다리다 못한 회원들이 출국 수속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불평과 불만 속에 쫒기 듯 어렵게 300여명 을 거의탑승한 우리를 태운 동방항공 비행기는MU2004기종으로 이곳 인천공항에서 3,200KM에 약 4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 와함께 이륙 전 기내의 유의사항과 안전사항을 영어와 한국어로 방송하며 인천공항의 짙은 안개로 출발이 지연됨을 양에 해주시라는 안내하며 9시 40분에 인천공항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상공으로 우리들의 불편한 심기를 하늘로 실코 날아오르기를 10여분 후 구름층을 벗어나 따스한 햇 빚 속을 곤명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 시간 가량을 지난시각 기내식은 누구하나 불평 없이 끝내고 두어 시간의 단잠 들을 깨우는 것은 기내방송에서 잠시 후 곧 곤명(쿠밍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에 닫혔던 기내 창문 커 텐을 열어젖히니 산허리곳곳에 올망졸망 논밭과 담수호가 보이는 듯싶더니 죽죽 뻗은 고속도로며 정비된 들판 과 하얗게 드러낸 하우스 등은 네 시간이 다되는 13시30분경 곤명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도착 한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가이드가 동반 하지 않은 불편 을 감수하며 곤명(kunming)공항을 나와 “봉황 37회동창회” 라 는 피켓을 든 젊은 청년을 따라 42인승 버스에 탑승한 차량은 33명의 정원을 확인 한 후 차내 마이크를 잡은 현지가이드는 유창한 한국어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며 하는 음성은 여성 도 아닌 중성의 목소리에 중국의 비행기는 항상 믿을 수가 없다는 유모 어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불편한 심기를 위로 한다 음 이곳 곤명(昆明)은 중국(中國)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 ,미안마, 라오스 삼국과 국경(國境)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雲南省)은 남한 면적의 4배에 해당하는 면적에 인구 약 4,500만 명에 26개 의 소수민족이 중 동남아 문화가 85% 인도 남방 문화가 15%를 점유하는 생활을 하고 있단다.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 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성도(省道)는 곤명시(昆明市)로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 한 뒤 한나라를 거쳐 1274년 원대에 곤명현(崑明縣) 이 설치 되었다.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附族)의 이름이며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 적으로 분할 정리 하면서 운남시(雲南市)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昆明市)라 칭해졌다.
곤명(昆明)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日本)의 동남아(東南亞)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다. 면적이 21,111km2 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날씨가 온화하여 연평균 일조 시간이 2,400 여 시간 으로 ‘춘성(春城),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해발 1,894m의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여 한겨울 철에도 최저 기온이 영하1도이며 지금의 아침온도는 영상 4도 정도로 온화한 탓에 겨울이면 이곳 중국이나 한국 축구 선수들의 동계 훈련의 적지로 유명하단다. 또한 7월중 최고 온도는 29도 이며 언제나 꽃이 만발하고 산이 푸르고, 대게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기간의 강수량은 평균 1,500mm정도이며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昆明)을 여행하기에는 가장좋은 시기라며 지금은 가뭄이 지속되어 담수호의 물도 줄어 가뭄을 받고 있으나 이런 자연환경(自然環境)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名勝古蹟)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中國)최고의 여행지로 주택이나 아파트 호텔 또한 난방시설이 되지 않아 곤명(昆明)을 찾는 손님들에게 가장 애로를 느끼는 부분이 있어 여러분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비를 들어 숙소인 호텔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아 드린다며 우리들의 박수를 유도하는 재치를 발휘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작년부터 달라진 중국 여행의 여권(旅券)관리는 개개인이하며 단체 비자는 한사람이 잘 보관 해달라며 본인은 (주)온라인 투어 곤명현지여행사 가이드 김 성 엽(연변 출신 80년생)가이드 경력10년으로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하며 중요한 소지품은 작은 가방에 담아 목에 걸어 가방이 앞으로 향 하게하여 도난이나 분실을 예방 하도록 강조 하는 것은 이곳의 치안질서가 어지러움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달리는 차창 밖의 대체로 잘 정비된 도로며 2~3계층의 고가 인터 췐지 며 도시철도며 지하로 정비된 듯 전기, 통신선로가 보이지 않고 가로 등주만이 정렬되어 깨끗한 거리의 변신 이였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중기며 건설 장비들이 중국에서도 가장 발달하고 내수판매가 높은 곳이란다. 현지시간 14시 50분경 곤명(昆明)에서의 점심 식사는 현지 식(現地食)으로 유명한 쌀국수인 미시엔(米線) 메뉴란 인데 이것은 쌀을 발효시켜 희고 부드러우며 시원한 감촉을 주는 면발과 닭기름 국물, 음식 재료가 따로 나와서 각각 그것들을 기호에 맞게 첨가해 먹는 음식으로 쿼치아오미엔(過橋米線) 이라고도 하며 운남 음식(雲南飮食)을 대표 할 정도로 유명하며 현지 돈으로 5원~100원의 천차만별이란다.
우리의 점심시간은 30여분 15시 25분에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비행기의 하루 늦은 도착으로 가이드 나름대로 짜여 진 것을 양해해 달라는 주문으로 우리 일행 역시도 그 가이드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 서산 용문(西山龍門)
첫 번째 코스는 서산(西山)에서 가장 장관이라 할수 있는 용문(龍門)으로 시간이 많으면 걸어서도 갈수 있으나 우리일행에게 선택된 건 10여분 전동카를 타고 도착하여 두 명이 함께 타는 리프트 카 탑승 장 이였고 리프트카를 타고20여분 오르는 산악의 전경은 절벽에 영웅이 마치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공중으로 비상하는 듯한 기세를 느낄 수 있는 달천 각(達天閣:하늘에 닿는 누각) 인용문(龍門) 풍경 지구이다. 한참을 오르는데 굴은 빗방울이 이마를 적시는데 그 빗방울의 깨끗함은 이곳이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얼마 후 비는 멎어 리프트 카 종점에 도착하여 지금 부터서는 걸어서 30여분 연출된 장관을 관람하는 시간으로 롱 먼은 청대인 1840년부터 1853년 까지 13년에 걸쳐 만들어 졌으며 70여명들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돌을 파내어 그 피와 땀으로 석실(石室), 신상(神像), 돌다리 등이 만들어 졌단다. 용문(龍門)에서 정상(頂上)을 쳐다보면, 오 백리 정도 떨어진 전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 할수 있다. 삼천각(三天閣)을 지나다 보면 별유동천(別有洞天)이라 적혀진 석문(石門)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나한상 절벽 상에 위치한 용문(龍門)풍경구이다. 돌로 된 터널을 지나다보면 첫 번째 석실(石室)이 나오는데, 절벽위로 세 겨진 그림이나 글 따위들이 알아보기는 쉽지 않 치만 참으로 아름답다. 그 앞으로 조금 더 내려 가다보면 보타(普陀)관광지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절벽사이로 터널이 있으며, 마치 굽이져 돌아가듯 만들어져있고, 높이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절벽위로 창문 같은 것이 있고, 아래로는 연못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매우 아름답고 놀라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만하다. 또다시 30여m가다보면 두 번째 석실(石室)인 자운동(慈雲洞)이 나오는데, 그 뒤로 방과 같은 홀이 있고 이곳 벽 위로 송자관음(送子觀音)이 조각 되어 있어 앞부분의 홀에는 마치 절벽을 그 위로 걸쳐 놓은 듯, 하며 앞으로 굽이친 부분에 전지가 자리 잡고 있다. 또다시 5분여 진행 하다 보면, 높이 세워져 있는 듯한 용문(龍門)이보이며, 골목을 지나면 달천각(達天閣)이 나온다. 이곳에는 문방(門坊), 평대(平臺), 석도(石道), 석실(石室), 신상(神像), 향로(香爐), 촉안(燭案), 공품(供品),등이 있고 모두 암석(巖石)위로 조각이 되어 있다. 한참을 용문에 정신이 팔리다 가이드가 지목하는 바다처럼 드넓은 눈앞의 전경은 한 폭 의 그림 같은 곤명호수는 중국 최대의 담수호로 진주양식의 최대기지로 탈바꿈 하고 있단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대략 한 시간 30여분이 걸려 내려오니 우리를 기다리는 소형 전동 카에 10여분 달려 우리가 타고 온 버스에 몸을 실고 이동한다.
★. 꽃 박람회로 유명한 화훼시장 그리고 한원 다도 관(翰苑茶道款)
이곳은 홍콩, 마카오 ,싱가 포루,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동남아 지역의 주요한 수출 생산지의 기본을 보여주는 화훼시장으로 안내되어 그리 크지 않은 꽃들은 생화보다 인조 꽃다발이 생화처럼 선보이는 관람을 마치고 저녘 현지 식 으로 안내 되는 버스 안에서는 이곳의 음식들은 기름기가 많으므로 너무 많이 먹지도 말고 약간 부족 한 듯 드시되 입맛에 다소나마 도움을 주기위에 이곳곤명에서는 귀한 직접 집에서 담근 김치와 버섯 무침을 식사 때마다 올려 드리겠다니 모두가 좋아하며 또다시 가이드에게 박수로 보답한다.
우리 일행이 운남(雲南)한원 다도 관 을 찾은 것은 가이드의 안내 계획에 의한 것이지만 이곳 곤명(昆明)이 산지(産地)인 오룡차(銕觀音), 야생차(苦丁茶), 화차(三七花茶),완전 발효 흑차(普洱茶)등이 유명한대 그중에서도 보이차(普洱茶)의 유명세 는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다수(多數)의 우리 일행이 미용과 다이어트, 위장 ,간 보호, 당뇨와 혈압(血壓)에도 좋아 인체의 열을 조절 할 수 있다는 전통(傳統)의 발효차(醱酵茶)를 특히 수면에 시달리는 집사람, 혈액순환 장애로 고통 받는 점을 중시하여나 역시도 구입 하였든 것이다. 진실(眞實)이 어데 까지 인지 궁금 속에.....?
★ . 남평 보행 가(南平 步行 街)
현지시간19시에 저녁식사를 끝내고 쫒기는 듯 서둘러 시내로 이동한 다음 스케줄은 곤명(昆明)의 명동거리이자 최대의 번화가(繁華街) 의 남평 보행 가(南平步行街)의 거리는 예전에 번화가는 초라하게 변해있고 새로 단장된 곤명(昆明)의 번화가라 해도 한적한 광주에 충장로 거리에 비유해야 알 맡는 표 헌 일까?
★ . 운남(雲南) 영상 가무(歌舞) 쇼
20여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걸은 뒤 다음 스케줄에 찾는 곳은 1인당 30불하는 곤명(昆明)에 오면 빠뜨 릴수 없는 영상 가무쇼 로 천지 창조를 시작으로 두 번째 기우제 세 번째 소수민족의 전통(傳統) 무용(舞踊)과 생활 형태를 춤과 소리로 표 헌 하며 공연에 사용하는 도구들은 그들의 실생활에서 쓰여 지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출연진의 70%이상이 전업 배우가 아닌 실제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뽑혀온 사람들이 소수민족 전통문화와 현대 무용이 결합된 운남 영상(雲南映像)에서 가장 볼거리는 “월광 무(月光 舞 : 달빛 춤), 네 번째 성지순례 그리고 다섯 번째 그 유명한 장예모 감독이 기획한 공연(公演)으로 운남성(雲南省)의 공작 춤 이였다. 오늘 따라 이공연의 예술 감독인 50대 중반인데도 30대의 미모를 자랑하는 ”양리핑“이 직접 출연한 행운의 날이란다. 공연 중 촬영은 할수 있어도 카메라 후래 쉬를 터뜨리는 것을 금지하는 줄을 모르 는 체 사진을 찍다가 제재의 수난을 받기도한 2시간에 걸친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영상 가무 쑈 였 다.
22시에야 공연까지 끝마친 강행한 하루의 일정은 공연장에서 10여 분 관광버스를 타고 2박의 숙소로 정해진 23층의 운남성(云南城)곤명시(昆明市)북경로(北京路)96호(号)있는500여 객실이 있다는 4성급 호텔 운남(雲南)금화 국제주점 객실2208호를 배정을 받아 ROOM에 들어서니 고풍(古風)은 어느 호텔에 버금가나 너무 오래된 불편한 시설과 깨끗하게 정돈 된 침상 들은 어제 밤 싸우나 에서 지치고 4시간의 비행기 그리고 도착 하자말자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강행군한 피로는 몸을 씻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 11시40분경의 총무 영렬친구의 부름마저 거부 한 체 잠자리에 든 하루였다.
03월09일 토요일 날씨 맑음(여행 셋째 날)
시차가 한 시간 늦은 호텔객실 어둠속에 시간을 가늠하기 힘든 탓에 몇 차례 휴대폰의 시간(時間)을 본다는 것은 잠을 설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코드 없는 샤워기며 수세식이 되지 않은 화장실(化粧室)등 오른팔의 장애로 시달리는 내게는 불편이야 많지만 7시경에야 밝아오는 아침에 6시30분에 호텔 내 조반이 준비가 더디지만 성격 급한 우리 일행 대다수가 5층 식당에 모여 앉아7시25분까지 관광버스에 탑승해야하는 시간들은 객실에서 차분한 시간이 많지 않아 분주하게 서둘러 차량에 탑승하자 인원점검을 끝낸 가이드는 간밤에 전기장판 덕택에 잘 주무셨냐는 인사부터 시작되며 차량은 아침 시간 때 이곳 금화호텔 주변의 도로는 지하철 공사에 전기의 지중화 공사가 한창이고 교통질서가 물란 하여 조금만 늦게 나오면 20여분 거리를 한 시간도 더 걸리기 때문에 여러분의 피로를 무릅쓰고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것이라며 곤명(昆明)이틀째의 여행이 시작 되는 것이다.
★★ . 루난 스린(路南石林)= 운 남 석림(雲南 石林)
오늘 첫 번째 여행코스는 곤명(昆明)시내에서 약120km 떨어져 있는 루난스린(路南石林)이라 고도하는 운남 석림(雲南石林)이란다. 시원하게 포장된 도로변의 농촌(農村) 정경은 유난스런 가이드의 경험담과 방송과 한 번도 한국에 와본 경험도 없지만 재치 있는 논리로 이야기를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시야의 농촌(農村)전경은 한국에 4월 초순쯤에나 있을법한 수형(樹形)도 정비 되지 않은 배꽃(梨花)이 만개 됬 고 복숭 아 꽃이며 가뭄에 시달린 듯한 완두콩이 곳곳에 전개(展開)되기를 한 시간 반쯤 지나 목적지 운 남 석림(雲南石林)에 도착하니 색 붉은 접 꽃 복숭아꽃이 석림(石林)의 운치를 더하였고 이곳에서 석림(石林)입구 까지 현지 돈 25원(왕복) 하는 전동차 을 탈것이며 금차 여행비(旅行費)에 빠져있지만 추 가돈을 받지 않고 내석림 관광을 시켜 드리며 가이드가 쏘겠다며 환영에 박수를 유도하여 우리일행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이곳 운 남 석 림(雲 南 石林)은 곤 명시(昆明市)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천하제일의 기괴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2억 칠천 만 년 전 바다 속이였던 석림(石林)은 이후 탄산칼슘 으 성분이 많아 지각 변동을 거치며 해발 1,750m 의 고도를 자랑하며 기상천외한 다양한 돌들이 높이는 일반적으로 5~10m, 가장 높은 것은 30~40m 에이 르 며 대략의 넓이는 평균 약 5km 의 대소 석 림은 핵심으로 가장 다 체 로 운 모양들의 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석 림(石林)부근에 유명한 관광지가 많아 2007년 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世界自然遺産)으로 지정 되었단다. 전동차(電動車)에서내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기괴한 돌들이 대석 림(大石林), 소석 림(小石林) 길 남쪽으로 400km2 나 되는 서울면적의 절반정도 구역에 연회색 산림과도 같은 수백 개의 2~3층 돌탑 같은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다. 홀로 서있는 것도 있고 가로 세로 엇갈려 하나로 이어진 것도 있다. 그중 유명한 이 자정 석림(돌숲석림)은 면적이 12km2 이고 기괴한 돌들이 천하제일의 기이한 풍경 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은 석 림 호수, 대석림, 소석림, 리자원, 등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당승석(唐僧石), 팔계석(八戒石), 장군석(將軍石), 오공석(悟空石), 관음석(觀音石), 사승석(沙僧石), 사병석(士兵石), 등 이 있고 종석(宗石)이라는 돌은 두드리는 위치에 따라 여러 음의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 이 단다. 관광 여정은 석림 풍경 구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며, 돌기둥, 석벽, 돌 봉우리가 온갖 자태로 기이함과 아름다움을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수많은 인파등과 서로가 좋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진풍경은 단체 관람으로 한 커트의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한자리 모이는 것 조 차도 어렵게 진행(進行)하고 저 위쪽 석 림(石林) 위에 지어진 누각(樓閣)의 전경을 찾아 가보는 석굴(石窟)또한 꼬불꼬불 작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미궁선경(迷宮仙境)에 들어 선듯 한 황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곳에서 나와 연못을 낀 웨 호(月湖)경관은 또 하나의 작품에 매료되어 50여분의 관람이 진행되었다.
중식(中食)에 오늘도 둥근 원탁에 마련 된 오리구이 점심은 가이드가 곁들여주는 김치와 버섯무침 그리고 친구들이 준비해온 한국의 고추장은 미키한 중국요리(中國料理)의 맛을 개운(開運)하게 하는데 가 일층 이였다.
점심이 끝나기가 바쁘게 서둘러 이동한곳은 운 남 석 림(雲南石林)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향동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잔잔한 협곡에서 뱃놀이와 종유석과 석순들이 장관을 펼치는 동굴이란다.
★★ . 구향동굴(九嚮 洞窟)
“구향동굴” 은 곤명(昆明)시내에서 약90km 떨어져 있는 중국(中國)최대의 석회암(石灰巖) 동굴 대(洞窟地帶)로 그 면적이200km2나 되며 중국에서제일 규모가 크고 종유(從遊) 등 경관(景觀)이 기묘한 동굴(洞窟)굴락 지로“종유동굴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 아쉬움이 있다면 석순이 거치고, 종유석이 아름답지를 않으며, 죽어 있는 상태의 석회암동굴(石灰巖洞窟)이라며 이곳이 한국 사람들에게 더욱 매료되는 것은 배우 김희선이 중국(中國)의 명배우(名俳優) 성룡 과함께“ 신화(神話)”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撮影)하였다고 영화 포스터 사진들이 안내판에 게시되어 가이드가 안내하는 것을 뒷받침 하여주고 있다.
구향동굴(九嚮洞窟)의 관람을 위해 우리일행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시각 14시 50분 동굴(洞窟)내로 들어서니 지금 이 순간에도 석순이 자라나고 있는 듯한 느낌 속에 찬란한 조명이 더욱 신비스런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넓은 기이한 경관이 수억 년 전으로 우리의 머릿속을 되돌리게 한다. 조금 더 진입하니 그곳 민속 공연단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속에는 이곳 이족(異族)들의 오랜 풍습과 전설들이 우리가 이해 할 수 없고 노랫말의 의미를 모르니 그저 그럴 것이라고 추측만 해보며 민속공연을 잠시 보다가 사람들이 진행하고 우리일행의 모습을 따라 계단 길로 오르내리면서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말하는 경남남해(慶南南海)의 다랭이 논을 연상시키는 동굴안의 올망졸망 연출된 다랭이 논의 모습은 아무래도 자연이 이루어 지지 않은 인공적인 손길로 만들어진 느낌을 받으며 계단을 오를 때는 가마꾼들이 모여 있으면서 호객 행위를 한다. 만원! 만원! 하면서 말이다. 3백여 계단으로 된 곳을 오르려면 오르는 것이 무척 힘들기 때문에 노약자나 걷기가 힘든 사람들은 이가마를 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가마를 타려거든 가이드에게 이야기하라고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가마꾼들이 만원이라고 하고서는 도착지에 이르면 이만 원을 요구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가마꾼이 한 팀인지라 한 사람당 만원에 두 사람 분 2만원을 요구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 주관적(主觀的)인 생각으로 하는 말에 결국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나니 박쥐 동굴이 나오고 그 동굴을 지나면 동굴(洞窟)밖이 된다. 이 구향동굴(九嚮洞窟) 은 6억 년 전부터 형성 되었다고 하니 6억 년 전의 모습을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역사의 공간(空間)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는 급한 경사를 오르는 것이 나에게도 쉽지는 않다. 헉헉 숨이 차며 계단을 오르다 보니 종유석과 석순들이 오색의 불빛에 비추어 아름답다고 표헌 하기 보다는 신기한 감탄사(感歎詞)로 이어지는 풍경을 후래 쉬를 터뜨려 사진에 담기는 역 부족인 것 같다. 박쥐 동굴을 지나면서 보니 천정에 붙어 있는 석순(石筍)들이 마치 박쥐가 천정에 매 달린 듯한 모습에서 지여진 이름 인 것 같다. 특히 이곳을 풍취석만(風吹石彎) 이라고 도 부른 다는데 이것은 동굴(洞窟)속의 기압(氣壓)의 변화로 기류가 형성되고, 동굴 천정에 맺힌 물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작용하여 종유석과 석순이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제주도며 강원도에 동굴이 있지만 역시 대국(大國)인 중국(中國)에 있는 장가계 코스에 황룡동굴(黃龍洞窟)이며 구향동굴(九嚮洞窟)에 비유 할 수가 업는 것을 느낀다.
2000년4월에 준공(竣工)했다는 높이 53m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니 선착장(船着場)에 관객들이 줄을 지여 서 있어 우리 일행도 그곳 입구에서 나누어준 노란색 구명(求命)조끼를 입고 순서를 따라 가이드의 안전설명은 관심 없고 12~3명이 탈수 있는 조그마한 나룻배에 올랐다. 벼랑에는 음취 협(蔭翠峽)이라고 큼직하게 세 겨져 있다. 이곳은 원래 하나의 신으로 이여 져 있었으나 카몬스트 지형인 이곳에 지하수맥(地下水脈) 이 흐르면서 동굴(洞窟)이 되었다가 그것이 무너져 내려 현재와 같은 협곡(峽谷)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서서히 나룻배가 움직이는 것은 현지의 부부 같은 남녀가 뱃머리 올라 열심히 노를 젓더니 젊은 여인네가 중국풍의 귀에 익은 유창한 노래를 불러 우리 일행의 박수를 받더니 더욱 흥이 나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기에 팁으로 2,000원 을 주었더니 감사 합니다, 하면서 계속하여 분위기를 따라 또한 우리 동반자가 팁을 주어 즐거운 분위기의 나룻배 놀이는 20여분 넘게 하였다. 이 협곡(峽谷)의 물의 깊이는 14.5m정도에 그리 넓지 않은 600여m 길이에 물은 많이 혼탁 하여 석회성분이 탓인가? 그러나 운치 좋은 협곡의 경관(景觀)이였다.
협곡(峽谷)의 뱃놀이를 끝내고 계곡(谿谷)처럼 폭포수 물소리에 맞추어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동굴 밖의 햇빛이 우리를 반기고 10여분 걸어 나가 가이드의 인원 점검이 끝나고 이동하는 곳은 250여m 에 이르는 에스 컬레이터 를 타고 구향동굴(九嚮洞窟) 입구방향으로 이어지는 2명이 한조가 되어 타고 가는 관람코스는 어쩌면 힘들어하는 구향동굴(九嚮洞窟내의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주는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 종착(終着)출구에서 걸어서 5분여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에 오르니 상당히 피로감을 느낀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이국땅 여행코스에 참으로 자랑 스런 한 친구가 있다. 표현이 잘못 됬을 여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시한부(時限附) 인생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건강이 좋지 않은 와이프를 행여 마지막 이 될 수도 있다며 휠체어 까지 한국에서 실고 다니며 힘든 여행 코스에 함께 동행 하며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윤 오환 친구의 자랑스러움이 말이다.
16시50분경 우리를 탑승시킨 버스는 들에는 농부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농촌 전경(前景)을 끼고 돌아 한 시간 반가량 달리며 이곳 곤명(昆明)시내의 아파트 값은 56m2에 8천만 원에 꾀나 비싼 집을 구입하였다는 자랑도 곁들이며 한참을 달린 차량은 안내 가이드의 부인이 부장으로 근무한다는 열대 고무나무가 있는 인도의 주산지와 이곳남부지방에서도 자라는 고무나무에서 추출된 액으로 만든 정품을 싸게 판다는 라텍스 공장에 안내되어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홍보부장의 설명 끝에 분위기상 서로의 눈치만 살피더니 그래도 새로 개발된 라텍스 이불이며 몇몇 친구들의 구매덕분에 생기가 난 가이드 의 표정을 보면서 그곳 근처에서 제공된다는 한국식 식탁의 저녁 식사자리에서는 삼겹살이며 이곳사람들은 생 상추를 먹지 않은 다는데 우리 입맛에 맞는 삼겹살 구이식사자리가 푸짐하게 진행 되었고 식당 옆 농산물(農産物)전시장에서 대다수의 한사람들이 중국(中國)에 여행 왔을 때마다 구입해가는 참깨며 잣, 등 을 쌤 풀만 보고서 가이드에게 주문하라며 5kg들이 에 35,000원인데 33,000원씩으로 대다수가 구입해가는 시간을 30여분 우리 일행이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것은 오늘의 일정의 마지막 스케줄인 곤명(昆明)시내 에 있는 발 맛 사지 를 받기위해 도착한시간은 현지시간 19시 20분에 도착 가이드의 기분이 흐뭇한 탓일까 40분 받기로 된 발 맛 사지 를 가이드의 사비를 들여 1시간 30분 받는 전신 맛 사지로 우리의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여유로 현지시간 21시 20분경 오늘 하루의 여행도 끝나는 숙소인 금화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 들어간 일행 중 몇몇 사람들이 그냥 지나 칠 수 없다며 나도 함께 자리하자는 제의에 장애(障碍)의 후 휴 증으로 그토록 제재해왔던 술자리를 밤 한시가 되도록 함께하고 내일을 위한 생각도 해야 했기에 2208호의 숙소를 찾아 오늘 하루의 일정을 끝내는 하루였다.
03월10일 일요일 날씨 맑음(여행 넷째 날)
오늘아침은 다소 바쁘다, 오늘은 숙소에 둔 여행용가방들을 챙겨 나와야 하는 곤명(昆明)에서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현지시간 5시50분의 기상보다는 좀 더 일찍 서둘러 가볍게 샤워를 하고 6시30분부터 시작되는 호텔식 조반을 먹고 집사람이 챙긴 가방들을 끌고 7시50분에 관광버스에 모두가 함께 탑승하여 곤명(昆明)에서 동북쪽으로 7km떨어져 있는 밍펭산(名峰山)위에 위치한 도교사원인“ 금전(金殿)” 이란다.
★★★. 금전(金殿)=(태화 궁: 太和 宮)
1602년 명나라 때 지어진 도교사원으로 중국(中國)의 4대 동전(銅殿:구리로 만든 전당)중 하나로 보존(保存)이 가장 잘된 동전(銅殿)이다. 계단에 오르니 태화 궁(太和宮)이라는 현판(現版)이 보인다. 문안으로 들어서니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영성 문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정원(庭園)이 조성 되어 있고 양편에 건물의 안내판이 있고 또 하나의 태화 궁(太和宮)이라는 건물(建物)이 있다. 이것이 진짜 태화 궁(太和宮) “금전 (金殿)”이다. 오늘날 “금전(金殿)”으로 부르는 태화 궁(太和宮)은 원래는 동전(銅殿)이라고 했다고 한다. 건물의 기둥과 지붕은 물론 대들보와 문 까지도 청동(靑銅)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건물이 건축될 당시 청동 빛이 마치 금빛처럼 보여 “금전(金殿)”이라고 불럿 던 것이 오늘날까지 “금전(金殿)”으로 부른다는 안내판의 소개다. “금전(金殿)”의 다른 이름은 태화 궁(太和宮)으로 곤명(昆明)으 명봉 산(名峰山)에 위치하고 있으며1602년 운남(雲南)순무 진 용빈 이 무당 산에 있는 태화 궁(太和宮)진무 전 을 모방해서 건축 했고 명나라 1367년 “금전(金殿)”을 명봉 산(名峰山)에서 계족산으로 옮겨 그 후 청나라 1671년 에 오삼계 가 이곳 명봉 산(名峰 山)에 “금전(金殿)”을 중건(中建)하였다. 이“금전(金殿)”은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최대 의 동전(銅殿)이며 진무의상과 진무칠성보검, 오삼계대도, 가 보존한다. “금전(金殿)”의 작은 연못 가운데는 여인상이 하나 서있는데 이 여인이 진원 원상 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여인들과 왕의 총예를 다툰 것이 현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불교에 귀의(歸意)하였다고 한다. 우리일행도 작은 연못 상 위치에서 사진촬영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금슬 좋은 부부사이 서로 서로 기념사진을 찍고서 밖으로 나오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현 지식을 먹기 위한 식당인 상선주류(商仙酒類)라는 식당으로 안내되어 가이드가 보충해준 김치와 버섯무침 그리고 일행들이 준비해온 고추장등으로 현지 식 과함께 불편하지 않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이 다음 코스를 위에 버스에 탑승하고 인원을 파악 후 출발하는 시각 11시 45분 시내의 거리는 한산한 일요일이다.
★★★. 위엔 통스(圓通寺)=원통사(圓通寺)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10분여 걸어서 다음 코스인 1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곤명(昆明) 최대의 사찰 원통사(圓通寺)에 도착 한 시간은 12시10분경 위엔통스(圓通寺)는 쿤밍시(昆明市)의 북쪽 원통가(圓通街)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원통 산(圓通山)으 남쪽 자락에 위치한 곤명(昆明)에서 가장 큰 사찰(寺刹)로 당 나라 때 세워졌으며 이곳에는 관세음보살이 없으며 석가모니(釋迦牟尼)가있으며 그 옆에는 간왕과 그 아들이 모셔져 있는 것이 특징이이며 황용과 청용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명(明)나라 때 황제(皇帝)가 보름 동안 피신해 있을 때 보존 된 것이란다. 처음에는 부타뤄쓰(補陀羅寺)라고 했으나 원(元) 나라 때인 1301~1319년 중건 되면서 현재의 명칭인 원통사(圓通寺)로 바뀌었다. 청(淸)나라 초기에 팔각정(八角亭)을 세웠으며, 각종 건물들이 보수 되었다. 지금은 성 불교협회(省佛敎協會)가 자리하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지여져 있는데, 천왕 전(天王殿), 원통보전(圓通寶殿),팔각정(八角亭)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팔각정(八角亭)은 원통보전(圓通寶殿)앞 연못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로 내부에 천수관음상(千手 觀音像)과 옥 불상(玉佛像)이 있다. 원통보전(圓通寶殿)뒷 편에는 태국의 건축양식 인 동 불전(銅 佛 殿)이 있는데 안치된 동불상은 태국의 국왕이 선물(膳物)한 것이란다. 12시 30분경원통 사(圓通寺)관람을 마치고 교통이 혼잡한 이곳에 우리의 관광버스의 주차가 불편하여 쫒기 는 듯 탑승하여 이동 한 곳은 다음 이동 장소인 취 호 공원으로 이동한다.
★★★.취 호 공원(公園)
12시35분경 호수에 있는 4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된 취호 공원에 도착하여 호반의 경관을 조망(眺望)하는 데는 10여분에 불과했고 오늘의 일정표(日程表)에 있는 중국 윈난[雲南(운남) 성 쿤밍[昆明(곤명)시에 있는 시립 박물관으로 1951년 문을 열었으며 청동기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역사에 관한 유물을 비롯해 종교와 자연사, 윈난 지역 소수 민족의 유품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는 종합 박물관으로 주요 전시물은 1972년 이가산고묘군(李家山古墓群)에서 발굴된 청동기를 비롯해 윈난 성 일대에서 발굴된 공룡 화석 등 자연사(自然史) 관련 유물(遺物) 등이다. 3층 건물의 박물관은 각 층별로 2개씩 모두 6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윈난 성의 상징으로 기원전 300년경 제작된 황소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호랑이 동상인 <뉴후퉁안[牛虎铜案(우호동안)] 원본>이 있는 것으로 유명(有 名)한다는 운남성 박물관(雲南城博物館)은 유물(遺物)이 별로 없다며 취호 공원 건너편에 있는 일정표에 없는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 陸軍 講武堂)으로 안내되는 시각은 12시 45분 경이였다.
★★★.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陸軍講武堂)
청일 전쟁에 패배 한 청나라 정부는 신군을 확대 개편하기 위하여 1985년 리 홍창 이 북양무비학당(北洋武備學堂)을 만들어 신군(新軍)을 편성하고 중국전국(中國全國)으로 이를 보급한다. 운남(雲南)에서는1899년 육군무비학당(陸軍武備學堂)이 설립되어 이학교가 바로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陸軍講武堂)의 전신이다. 이학교의 졸업생(卒業生)중에는 한국의 제1대 국무총리(國務總理)겸 국방부장관(國防部長官)을 지낸 이범석(李範奭: 당시 가명 李國根), 월남임시정부주석 무 해추(武海秋), 조선인민군(朝鮮 人民軍)총사령관(總司令官)겸 조선(朝鮮)민주주의(民主主義)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부주석(副 主席)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상무위원장(常務 委員長)을 지낸 최용건(崔庸建)원수(元首)등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이 군사학교가 바로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陸軍講武堂)이다. 1909년 에 설립되어 1395년까지 26년간 모두 8313명의 졸업생(卒業生)을 배출했다. 1935년 이후에는 이곳이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곤명분교(昆明 分校)가 되었다가 중앙육군군관학교 곤명 분교 즉 황포군관학교(黃布軍官學校)곤명분교(昆明分校)가 되었다가 1938년1월에 다시 황포5분교로 개칭(改稱)하였다.
이범석(李範奭)이 운남 강무 단(雲南講武團)에 들어 갈 때는 비밀리에 들어갔다. 그때나이15(1916년)세 때 중국(中國)]으로 와서 상해에서 韓國獨立運動 의 지도자인 신 규식과 손 중산 간의 연락원을 맡았다. 당시 상해에 망명해와 있던 한국임시정부(韓國臨時政府)는 중국에 군사인재를 키워달라고 요구한다. 이범석은 바로 이런 경로를 통하여 운남 강무 단(雲南 講武團)으로 오게 되어 손 중산 이 당계요 장군에게 부탁하여 이범석(李範奭)을 비밀리에 입학하게 해준다. 당시에는 조선월남(朝鮮越南)의 혁명(革命)청년(靑年)이 강무당(講武堂)에 입학 한 것은 기밀사항(機密事項)이였고 당계요만 알았고 교장도 교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1919년 일본 점령군에 오래 동안 점령 당해있던 조선국왕(朝鮮國王)고종(高宗)이 서거 하여 장례식(葬禮式)때 대규모 3.1운동이 벌어진다. 이범석(李範奭)등은 급히 반일(反日)사업에 뛰어들기 위하여 당계요 에게 서신을 보내어 우리가 운남 에서 배운 실력을 이때 공헌 하지 않으면 언제 공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각하(閣下)께서 우리가 귀국하도록 동의 한다면 조국독립(祖國獨立)에 우리 민족은 당신의 은덕을 영원히 기억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범석(李範奭)은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중국동북(中國東北)으로 가서 중국조선국경지역에서 유격대(遊擊隊)를 조직하고 항일운동(抗日運動)을 벌인 그때 나이가 20살 이였다. 그가 지휘한 가장 유명한 전투는 1920년10월의 청산리전투(靑山裏戰鬪)였다. 일본군 수천 명을 사상시켰다. 이것은 한국독립사상 대표적인 전투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時政府)수립 후 초대국무총리(初代國務總理)겸 국방부장관(國防部長官)이 되었고 그는 운남 강무 단(雲南講武團)을 떠날 때 약속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한민국 성립문(成立文)에서 는 중국에서 이미 고인(故人) 이 된 당계요 장군의.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한다. 당 계요 는 88명의 대한민국(大韓民國) 건국훈장(建國勳章) 수여자중 한사람이다. 또한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陸軍講武堂)출신으로는 한국최초 여자 비행사(飛行士) 도 태윤 이 이 강무 당(講武 堂)출신이며 1940년 한국 공군을 창설하고 1967년 작고한 권 기옥도 이 운남 육군강무 당(雲南陸軍講武堂)출신이다.
★★★. 운남(雲南)민속촌(民俗村)
중국(中國)은 한족(漢族)을 비록 하여 56개의 소수 민족이 집합된 다민족(多民族)국가 인데 그 중에서 운남 에서 상주(常主)하는 소수 민족의 수가 52개 민족에 거주하는 인구수가 5,000명 이상 되는 소수민족(少數民族)이 26개나 되어 운남은 소수민족 천국(天國)이 라고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운남 민속촌(民俗村)은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풍습(風習)과 전통가무(傳統家務)를 볼 수 있는 운남성(雲南城)곤명 시 남쪽8km떨어 진 곳에 있고 그 면적은약 135ha(2000무)입니다. 남쪽은 전지, 북쪽으로 는 유구한 역사 곤명, 서쪽으로는 저명한 서산풍경구가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1992년 2월18일 이곳 민속촌을 조성할 당시 민속촌내에는 운남(雲南) 26개 민족(民族)중8개 부족 마을에 . 민속촌내에는 1:1의 비례로 민족의 마을이 있는데 지금 이미 따이족,백족.이족.나시족,기노족,라고족,보랑족,와족등8개 민족의 마을이 건설(建設)되여 있다고 한다. 2007년 10월01일에 요족, 푸미족, 만족, 아창족, 리 수족, 회족, 몽고족, 경파 족, 하니 족, 독룡 족, 등 계속 증가되어 현재 까지 2,000무(약 135ha)의 광활한 면적에 각각 의 26개 마을로 확장되어 지어있고 민족단결광장(民族團結廣場), 민족가무(民族家務)연출 청, 민족 박물관, 민족 초상관등이 있는데 운남 민족의 일종 비춤이다. 민속촌에 들어서면 각 마을들이 정연 히 있고 민족특색이 서로 다르게 농후 하다. 원속 에 원이 있고 마을 밖에 마을이 있다. 그리 고 각 곳에 아름다운 장식이 되어 있고 민족 특유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사람들로 부터 <인간선경>으로 불리 우고 있다. 또 민족단결광장,민족가무연출청,대형수상분천 및 막 영화, 풍미 음식점, 유람선 부두 등 시설이 있고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들어져 운치가 더하며 그곳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다름 이 없다. 민속촌내에는 관광객들이 무료로 사용 할수 있는 관광차(觀光車)가 있다. 이렇게 민속촌(民俗村)을 만들어 소수민족(少數民族)들의 자부심(自負心)과 긍지를 살려주면서 부가적으로 관광(觀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는 중국고대(中國古代)소수민족(少數民族)사를 돌아보며 그 생활상을 엿 볼수 있었든 것이나 시간(時間)이 허락 한다면 전체마을 들을 돌아보면 싶지만 시간이 허락 되지 않아 8~9개 마을만 돌아보는 것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약3시간 에 걸친 민속촌(民俗村) 여행은 계속해서 걷는 관람 이다보니 피곤에 지쳐 현지시간 16시50분에 대기 하고 있는 차량(車輛)에 탑승(搭乘) 하고 50여분 걸려 시내로 가는 여정은 모두가 피로에 치쳐 도착한곳은 이곳 곤명호의 최대양식장에서 양식하여 직접 키우고 가공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진주 보석 매장이였다. 넓은 매장에는 한국어에 능통한 홍보원의 설명 과 점원들의 상술(商術) 속에 구입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도 정이 많고 잘 따라주는 분위기는 몇 사람들의 구매가 이루어져 약 40여분의 시간이 소비하고 이제는 이곳 곤명에서도 마지막 현지 식(現地食)으로 이름난 버섯 샤브샤브 안내되어 4개의 테이불 에 나뉘어 앉은 일행은 오후에 걷기도 많이 한 고됨 속에 40여분에 걸쳐 배불리 저녁 을 먹고 이제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스케줄인 발 맛 사지만 남았다. 주관 여행사의 부탁 때문일까 아니면 첫날의 비행기 연착으로 인한 탓일까 아무튼 재치 있는 현지가이드의 저녁 식사 후 맛 사지를 한다는 업소 “운천 수사(雲 天 殊 舍)” 로 가는 관광버스 내에서 그동안 많은 협조로 무사히 마친 37회 여행 객 여러분에게 감사한다는 인사와 함께 오늘도 US 달러 20불 한다는 발 맛 사지 를 충분한 시간도 있는 우리에게 가이드의 사비로 전신(全身) 맛 사지로 써 비스 해드린다는 한마디에 힘찬 박수를 받으며 곤명(昆明)에서의 피로를 함께 털어 버리고 우리일행이 곤명(昆明)비행장(飛行場)에 도착한 시각은 현지시간(現地時間) 밤12시가 좀 못된 시간 도착 하든 길로 그곳에서 구입하여 배달되어온 농산물(참깨, 잣 등)을 인수 받고 티켓 팅을 끝내준 가이드와 2박 3일의 아쉬움 정을 인사로 나누고 우리는 서로 해어지는 시간 이였다.
03월11일 월요일 날씨 맑음(여행 다섯째 날)
출국 수속을 끝낸 일행이 새벽 2시 출발하는 게이트에 대기하는 손님은 우리가 마지막 인 것을 느끼는 것은 출국 심사대(審査垈) 모두가 마감 정리에 부산한 것이다. 예정된 우리를 태우고 갈 MU2003 비행기에 탑승한 시간 01시40분 예정된 2시의 비행기는 어둠을 가르고 서서히 곤명(昆明)을 굉음을 뒤로하고 이륙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기내식이 배정되고 식사가 끝나자 모두가 잠자리에 드는 것은 당연한 상황 속에 단잠으로 피곤에서 깨어 날 때는 인천공항(仁川空港)이 가차 워 지는 기내(機內)안내방송 에 고국에 돌아오는 현지 이곳 시간은 곤명 보다 한 시간 이른 새벽 7시가 다되어서였으나 입국수속(入國手續)을 마치고 화물까지 찾고 보니 어언 8시가 다되어 서울 에 있는 회원들 과 그리고 각자 집을 찾아 헤어지는 4박5일의 일정(日程)은 고향 광주에 9명의 회원 들은 아침 8시40분 인천 공항 발 광주행 우등고속을 이용하여 광주종합 터미널에 도착하니 12시30분이였다, 또다시 각 지방으로 서로가 헤어져야하는 4박5일 여정이 최초 내가 추천하여 정해진 장소 곤명(昆明)여행은 첫날의 비행기 지연으로 불편이야 있었지만 모두가 후회 없는 분위기 속에 무사하게 끝난 것을 느끼며 우리 부부 역시도 택시를 불러 집으로 향하고 이 여행기를 쓰면서도 비록 현지가이드의 현지역사소개가 거의 없어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그때 기억을 더듬어 가며 먼 한손의 장애(障碍)중에 시끄러운 관광버스 내의 녹음자료 그리고 현장(現場)을 사진(寫眞) 에 담아 참고(參考)삼아 훗날 여행의 기억을 길이 남기고자 나름대로 번뇌를 감수하며 기행문(紀行文)을 마치렵니다.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 너 그 러히 용서하시고 기행문을 참고하시기를 기대 합니다.
서기 2013년 03월 17일 기행문(紀行文)을 정리(整理)하며 鄭 燦 悅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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