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일본 북큐수의 온천여행(후쿠오카, 뱃부, 아소, 구마모토)

봉암 2013. 6. 9. 15:57

日本북큐슈 溫泉 旅行記(후쿠오카,뱃부,아소,구마모토)
旅行 日程: 2007년 2월25~2007년 2월28일(3박 4일)
旅行 團體 : 鳳凰 초등학교 37 회모임 (卒業 45주년)
* 동행여행자 :최 창 은씨 부부-전북환주군 삼례 읍 석전 리143-2 (국제관광여행사대표)
국제관광 전화:063-291-3434/011-659-4964/김 정옥 씨부부 (이상 4명 합류하였음)

주간 旅行社 : (주) 모두여행사 “정 옥녀” T:225-0210
光州 -釜山 : 천사관광 “강 승표”062-514-1004
釜山-日本-釜山: 뉴-카멜리아호 (시속45km/22,000t급)
釜山-光州:소리투어(조이트래불)최 금호:T, 018-621-8770
日本내 觀光버스: 35인승 Y K C -352
案內 現地 가이드: 光州 두 암 동 出生 32세 “나 형 권”
旅行 經費 : 1인 여행비399,000원(동반 시1인 회비 에서지원)
* 불참석 회원 4명에게 지원금 50 % 환불 協議
* 당 여행 회비는 전 회원 공희 10만원 거출키로 합의

산업화된 환경과 옛것이 함께 공존하며 日政 治下에 자기네 文化를 접목도 많이 하였고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가깝고 氣候 역시 크게 차이가 없으며 政治,경제, 文化 적으로 밀접한 關係를 가지고 있는 나라 日本을 관광하기로 선택한 것은 3~4년 전부터 會議가 있을 때마다 논의가 되어 당초는 금강산 觀光으로 거론 이 되어 매년 10만원씩을 旅行 會費로 별도 거출 하였으나 최근 경색 되고 있는 금강산 觀光에 대한 여론도 종합하고 몇 회원의 미납 한계가 엇갈려 있는 터에 그래도 다수 會員들의 의견이 비용이 적게 드는 가까운 日本 旅行을 추천 끝에 費用의 절감을 위한“ 3 안”을 선택 하게 된 旅行이다.
18명의 회원 중 해외 출장으로 어려움이 있는 손 행칠 회원 탈회의 의사를 표한 박 병 준 회원을 빼면 16명의 회원이 함께해야 하나 “홍 석준“박 응 규”최 종구“ 회원이 家庭사정과 健康상 문제 로 참석치 못한 “김 기송” 會員 모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 부부참석을 원칙으로 50 %를會費에서 지원하자는 결의 가 되어 23 명 의 會員이 다녀온 3박 4일의 旅程을 기록 하고 저 한다. 2006년 현재 인구 1억2천 6백만에 한반도의 1.7 배인 약 38만 평방km2에 순수한 日本 민족 98 %이며 일본만이 특유한 신도 종교 가 약 800여 종류가 있으며 그중에 “신도”와 佛敎“ 기독교”가 우이를 차지하는 日本 남북으로 2,800 km2에 걸 처 4개의 주요 큰 섬과 4,000 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로 혼 슈 .시카고 ,규슈 .홋가 이도, 중 규슈 로 선택한 것은 지금의 季節에 적합한 최 남쪽에 있는 곳으로 적격 이였고 4개의 추천 상품 중 택일된 곳으로 10명의 남자회원과 11 명의 여성회원 그리고 효도가 지극한 영렬 회원 의 母親 동칠 회원의 딸이 합류되어 23명의 會員이 여행 일정에 함께했으나 고향 쪽에서 12명 서울에서 11명 이 나누 어 저 출발하다보니 결국 광주~부산, 서울~부산 의 비용의 추가가 비용의 증가로 회비지출이 늘어난 가운데 부지런하게 추진에 노력해준 김 형 년 총무의 노력과 협조해준 회원님들의 덕택에 무사 하고 즐거운 旅行이 되었음을 깊이 감사드리며 기행문의 장을 피력 하고 저 한다.
서기 2007년 03월 4일 여행 에 함께해온 정 찬 열 올림

서기 2007년 2월 25일 (여행 첫째 날)
광주의 봉선 동 아파트 앞 3거리에서 천사관광에 집사람과 함께 탑승한 시간 은 오전 11:30분 경 45 인승 천사 관광(觀光) 버스에는 낮 모른 여행(旅行)객이 대부분의 앞좌석을 자리하고 있고 鳳凰에서 탑승한 우리 회원대부분이 뒤쪽 자리를 하고 있어 우리 부부역시 뒤쪽 의 빈 의자를 자리하고 旅行 정출발지인 광주 역 광장에 12시가 넘어 도착하니 또 다른 4명의 여행객과 모두 여행사 정 옥녀 사장을 만날 수가 있었다.
12시 20분 광주역(光州驛)을 출발한 觀光버스가 광주 시내를 벗어 날쯤 미모의 30대 아가씨가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하면서 소리투어 회사 안내가이드로 낮 서른 60대 초반의 앞자리에 관광객 들이 소리투어 여행객으로 나주 문평 에서 30 여명 넘어서였고 다음 소개를 받고나온 거의 같은 또래의 몸이 여릿한 아가씨는 日本 현지 가이드라며 本人 소개를 하였고 우리 일행에 까지도 소리투어라고 적인 가슴 뺏지을 나누어주며 日本에서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소리투어로 모든 것을 함께 해달라는 부탁이 수적 의로 열세인 우리가 그만 더부살이 출국 여행이 되고만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를 따라 남강휴게소에서 각자 가 알아서하는 점심과 휴식시간을 취하고 2~30여분 후 출발하는 버스는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 전형의 관광차놀이로 이여지고 釜山항 國際旅客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 16시 30분경 터미널 2층 대기실에 대기 하는 동안 17시 50분에 도착한다는 KT-X호로 서울에서 14시30 분에 출발한 11명의 서울 의 우리 팀은 보다 늦은 18시 30분경 어느덧 釜山-日本을 오가는 뉴-카멜리아호에 탑승객이 여유롭게 빠저 나간 후의時間 이였고 出國 절차를 마친 후 30여분 대합실내 면세점을 돌아보고 탑승 후 23시에야 출항하는 500여명을 넘게 실은 2만2천 t급 대형선박에 우리 一行만의 별도 다인 실을 배정받지 못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나 마침 나의 연락 끝에 우리 會員들의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찾아 와준 釜山에 사는 손행칠 會員 의 귀 뜸에 따라 선박에 탑승 후 선내의 사무장과 가이드의 협조를 받아 여자 분들이 합숙소310호 우리 남자회원들이 합숙소인 304호를 別途 배정을 받아 우리 에게 旅行을 대비한 토의를 갖는 시간과 불편 없는 출항 길에 선내의 저녁식사를 방송의 案內에 따라 하고는 거대한 선박동체는 어둠과 파도를 가리며 태평양 바다위를 떠나는 첫날의 旅行은 잠자리로 이어지며 선박의 엔진소리와 부디치는 파도소리와 동체 의흔들림을 설치는 자장가 삼아 시작 되고 있는 것이다.

서기 2007年 02月 26日 (旅行 둘째 날)
새벽 6시40분 아직 여명이 트지는 않았지만 日本 의“하카다항”부두의 밝은 조명(照明)의 불빛에 우리가 타고 유람선이 정박해 있음을 직감 할수 있다.
저마다 일찍 일어나 선내를 맴도는가하면 20여명이 이용하기에는 비좁은 선내 샤워 시설(施設)에 욕탕 의 샤워기로 머리를 감고 우린 남녀의 서로 다른 客室을 이용한 탓으로 아침준비며 갈아입는 옷가지를 가족을 찾아 여념 하는 동안 혼잡을 피하기 위해 여행 그룹 별로 食事時間 案內 의 방송이 들려 우리 一行의조반(早飯)은 07시 30분에야 시작 되었고 푹 퍼진 넓은 국그릇에 두세 가지의 반찬은 그래도 우리 입맛에 맞춘 탓인지 누구하나 불평 없는 아침식사 에 사전에 별도 준비한 김치며 김은 부족 한 입맛을 맞추는 데는 인기(人氣)의 산물 로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한국산(韓國産) 소주 한잔은 여행 이였기 에 있을 수 있는 朝飯 飯酒(조반 반주) 로이여 지는 時間이였다.
아직 은 入國수속 을 시작도 않 하는데 무엇이 급한지 먼저 조반타임을 끝낸 많은 사람들은 조급한 심정으로 크지 않는 로비에 열지여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보면서 이곳 日本이라는 나라는 자기들 나라의 표준 데로 시간에 억매이지 않고 정상 출근시간(出勤時間)에 맞추어 입출국 의 수속을 하기 때문에 선박(船舶)편 旅行역시 어제 밤 부산항에서 늦게 출발 하고 船內서 時間에 맞추어 조반까지 의 스케줄이 이여 지는 것이란다.

크게 까다롭지 않고 소란 없는 입국절차가 30여분 하카다 항 대합실에 내려가니 덥수룩한 머리와 헌칠한 30대의 젊은 사내가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23명의 일행이 거의 다모이고 다른 일행 역시 저마다 안내자 의 지시로 거의 다 대합실을 나가는데 4명 의 또 다른 인원이 와야 한 다기에 우린 우리가 탑승할 버스를 요구했고 4~50 여 미터 떨어진 주차장 대기한 로 변 에 초록색 외면에 YKC 글자가 크게 박힌 40인승 버스를 안내 받아 그곳으로 이동했고 5~60 대쯤으로 보이는 운전기사님 이 어디선가 우리를 발견 수래 차처럼 끌고 온 우리의 가방 짐 들을 짐칸에 실고 버스에 올라 자리하고 기다리기를 10여분 배에서 내리는 旅行객이 저마다 갈길 찾아 한산해질 무렵에야 낮 모른4~50대의 두 부부를 동반하며 가이드가 버스에 올라 27명의 인원점검이 끝나고서야 버스는 “하카다항” 을 빠 저 나왔다. 주위 환경이 낮 설지 않음은 국내서 자주 보는 현대라는 글자가 붙은 콘테 이너며 건물 생김 세나 주위 환경들이 우리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시절 일본 건축들을 한국에 접목해 놓은 것도 그 한축이라 생각한다.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自己紹介) 을 하는 가이드는 우리 고장 光州의 두 암동에서 태어났고 부모님도 그곳에 사신다는 32세의 유학생 (留學生) “나 현 권“이란다
일찍 日本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한때는 韓國에서 일본어 학원(日本語 學院) 강사로 일도하다 이렇게 가이드로 안내자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2년 반이 되었다며 전라도 사투리가 포근함을 더해주 며 일본의 역사 地理 그리고 日本 政治 경제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 저야 하는 가이드의 이 얘기를 들의 며 그제 까지 관광객을 떠나보내고 우리가 온다는 연락과 우리의 案內를 해달라는 여행사의 뜻으로 하루를 더 기다려 오늘 우리를 만나게 되었으며 우선 연령상으로나 지역 出身이 호남이라서 2박3일의 함께하는 안내(案內)가 안도 된다는 것이란다. 우리나라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는 아담하고 정렬함이 돕 보이는 건물들 이곳이 규슈(구주)日本말 히카타라 하는 이 도시는 光州와 비슷한 인구120만 의 도시로 차창 밖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처럼 묘지가 없는 대신 검물 옆이나 농촌 주택가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는 묘비 석 (납골당) 예전에는 사람이 죽의면 절 .안방 납골 묘 등 세 곳에 신을 모시다가 거의가 지금은 위패만 집에 두고 화장한 시신을 눈에 보이는 저 납골묘에 안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전개되는 아담한 농촌주택은 대부분이 2층 주택이며 그리 높지 않으며 층고가 낮은 아파트 들 이나 큰 고층건물 이 없는 것은 1년 에 평균 4000 여 번 씩 오는 크고 작은 지진(地震) 때문이란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창 밖 좌측시야에 들어오는 공항은“후쿠오카공항”이란다.
공항 건물(空港 建物) 주차장에는 낮잠 자듯 수많은 차량이 주차 되있는 것을 뒤로하고 이곳 日本은 차량은 많지만 소형 차량들이 대다수고 실리만을 중시하는 日本人들 은 주중에는 거의 운행(運行)을 자재 하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 수단으로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그 또한 이유가 이용하는 도로 곳곳 마다 유료통행료가 대부분이고 통행(通行)료 비싸기가 만만치 않아 택시의 기본료가 590엔(한화 약4오백 원)그래서인지 영업용(營業用) 택시가 그리 흔치 않음을 볼수 있다. 日本에는 차량의 번호판이4종류가 있는데 600cc이하 경차는 노란색 바탕에 하얀색 번호판은 600cc 이상 이며 보통 영업용車輛은 영업용 그리고 600cc이하의 영업용은 검은 색 번호판으로 구분한단다.


차량이 얼마를 달렸을까 08시 40분경 가이드의 案內를 따라 우리 일행이 주차장에 내려 편도 1차로의 포장된 노변 길을 따라 250여 m좁다란 인도 옆 가로 에는 선물가게 가 우리의 시선을 끌지만 이곳 日本의 가게들은 대부분 9시가 넘어서야 가게 문을 여는 탓이란다.
이곳저곳에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릴 듯 매화꽃이 우리나라보다 기온의 포근함을 안내하고 크고 작은 선물가게와 잡화전이 늘어선 노변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니 콘도레이(烏居)를 만나 게 되고 그 앞에 소가 앉아 있는 동상을 보며 가이드의 설명인즉 이소가 끄는 마차에 스가 하라 노미 치 자네”유체가 실려 나가는 데 이우마차가 이곳에서 갑자기 멈추어 꼼짝 달 삭을 안 해서 그 소가죽은 후 그 소를 이곳에 묻었다는 태재부 천만궁(太宰府天滿宮,다자이후 텐만구) : 시인이자 학자이며 철학자였던 관원도진(菅原道眞: 스가와라노미치자네, 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 신사로 왕의 친애를 받아 일찍 높은 벼슬 지위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못이 겨 갑자기 다자이후의 관리로 좌천이 되어 귀향을 오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다자이후에서 운명(運命)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죽는 날 매화나무가 교토와 규슈등지에서 날아와 하룻밤 세에 육천 그루의 꽃을 피웠다는 전설(傳說) 속에 그를 좌천시키는데 가담한 人物들이 모두 이유를 알 수 없는 병고(病苦)로 죽게 되어 그를 모시는“태제 부” 천만궁을 짓게 되었으며 또한 이동상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다이 코 바 시”라고 불리 운다. 이 다리를 건너면 현세와 내세를 연결한다고 해서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觀光) 객을 많이 만나게 된단다. 오늘날까지 본전 (중요 문화재) 앞에 있는 매화 (도비우매:飛梅)라고 불 리우는 매화나무가 바로 이 전설을 대변하고 있다. 이곳의 다리 밑 연못에는 거대한 거북이와 자라가 살고 있고 큰 잉어들이 유유히 노는 모습이 여유롭다.
안쪽에 자리한 이 건물은 희 노 끼라는 나무로 지붕을 하였으며 더욱 유명 한 것은 평성 14년 (1960년대) 火災로 인해 재건축한 건물이란다. 우리일행이 이곳 본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각자 선물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따라 이동을 서두르며 주차장에 대기한 버스에 탑승 한 시각 오전 10시를 알리는 시간이다.
다음 목적지 구마모토로 이동하는 차 속에서 가이드는 日本 전채에는 한국의 道에 준하는 현이 43개 가 있고 이곳 규슈에는 8개의 현이 있으며 일본사람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않되 는 것은 집값 땅값이 너무 비싸고 물가 역시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맛 벌이 부부가 대다수란다. 달리는 차창 가에 곧고 푸르게 진행되는 푸른 숲은 곧고 성장속도가 빠른 삼나무에 지진에 강하고 도움이 되는 대나무 밭이 많다고 한다. 삼나무는 성장속도가 빠르고 곧으나 재질이 약하고 꽃이 필 때에는 꽃가루가 많이 날려 많이는 植 堤(식재) 되었으나 실패작의 하나라고 한다. 한참을 달리는 버스는 인터체인지에 접하고 곧바로 톨게이트 에 접어드는 것으로 편도 2차선이 전개 되는 것으로 아마 고속 도로
(高速 道路)인 듯싶다. 차 창밖으로 들어오는 아담한 건물들 과 농지전답(農地田畓)을 생각 없이 보노라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웬 지 농촌주택(農村住宅) 대부분 2층집이 대부분이며 습기가 많은 기후 조건(氣候 條件) 때문에 전통 농촌가옥(農村家屋) 대부분이 1층은 주로 주방과 거실로 사용하고 2층은 주로 침실로 사용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단다. 또한 달리는 차량역시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운전석이 우측에 있어 당연히 좌측 차선을 이용하는 통행방법에 이곳 고속도로에는 125cc 이상의 오토바이는 고속도로를 허용하기에 이따금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볼 수가 있었다. 전개되는 가로풍경을 눈요기삼아 11시가 되어 도착한곳은 규슈 地方 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며 일본의 3대 城 의 하나인 구마모토 성 (能本城:능 본성)은 구마모토 현의 現廳 으로 1607년 개축(改築) 된 성의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가또이요마사가 7년에 걸 처 완성한 일본에서 손꼽히는 성이며 정치(政治)경제(經濟), 중심로 덴쇼 16年 (1588년) 가토 기요마사 북반구 19만 5천성의 영주로써 약 오백년 전부터 城 이 있는 도시(都市) 로 발전해 왔으며 현재 인구는 약 63만 명으로 흔히 불의 도시로 불리 우며 두 가지 모양의 돌담으로 불리 우는 경사가 완만한 구마모토 능본성 (能本城) 돌담과 경사가 심해서 세월(歲月) 이 흐른 뒤에 증축된 것을 알 수 있고 또 하나의 돌담축조는 소화 35년 에 외각을 복원한 지상6층 지하 1층 의 돌담 축조위에 높이가 약 30m 에 이르는 건물(建物) 이며 입구 쪽 우측에 서있는 소천수각 은 지하(地下) 1층에 地上4층 이 19m나 되는 建物 에 내부에는 가토가 호소카와가 서남전쟁(西南 戰爭) (메이지 10년 :1877년)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광장(廣場) 우측 큰 기와 건물 을 둘러쌓여 철재 빔으로 복원 공사(復原 工事)를 하고 있는 것은 “혼 마루어전” 오희로마 (큰방)의로 축성 400년 이 되는 2007년 에 복원 완성(完成) 될 공사가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우리가 올라가본 대천수각에서 100여 m 떨어 저 모양이 비슷한 천수 각은 “우 토 야구라” (宇土櫓 )는 多層 애구라 망 루(望樓) 란 다.
지하1층 지상5층 규모 로 다른 성곽에 비하면 천수에 필적할만한 곳으로 이곳이 난공불락(難攻 不落) 의 거대한 요 세 엿 음을 알 수 있는 지역이란다.
구마모토 능본 성(能本城)을 관람하고 나오는 시각 12시 30분 하늘이 맑고 춥지 않는 좋은 날씨라며 감탄스런 말을 하는 안내 가이드 아무튼 유럽의 5개국 동남아를 두 차례 중국을 3~4번 이번 日本 여행을 찾아 온 나에게는 일기가 좋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이것도 多幸 으로 기분 좋은 것인 듯싶다.
능본성 을 나와 5분여 그리 멀지 않는 현지 의 중식식당(中式 食堂) 1층으로 아담하지만 가지런한 태 이불 이 줄 지여 정연하고 그리 높지 않는 칸막이가 旅行客(여행객) 들의 편 가름이라도 하듯 분주 희 써 빙에 바쁜 아가씨들이 그리 많지 않는 식사 객 들 사이로 우리 일행도 한쪽에 자리하고 120여 가지 뷔 폐가 입맛 따라 찾는 식객을 유혹하는 중식 시간 준비 해간 소주잔 은 더없는 맛이라고 할까? 맛을 보아야한다고 한가지씩만 소반에 가 저와 배불리 먹고 잠시의 휴 식 중 직업(職業) 의식에 빼놓을 수 없는 日本 의 전력설비(電力 設備)는 한국이나 다름없는 C P 전주(電柱) 에 6600 볼트의 1차 배전전압 설비 가는 곳 마다 당연히 100V 2차 전압 그리고 인입구에 붙어있는 전력량계(電力 量 改) (계량기)부착 內容 이나 생김 세며 인입구 D V 전선 에 주상에 압착 퓨즈 등 우리나라가 日本 의 설비(設備)를 답습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현재(現在) 우리나라는 동력 380V 에 전등설비 220V 로 배전설비 가 훨신 잘되어있는 것으로 내심 생각이드는 것은 발전하는 한국의 기술력 이라고 아니 선두주자로의 질주라고 말하고 싶다.
이곳 日本 에는 우리나라에 연구 과 재로 시험단계에 있는“학 조바루”( 지열발전소:地熱發電所)가 기당 5만 KW 급 3기 로 15만 KW 가 發電(발전) 중에 있단다,
우리 일행이 점심을 끝내고 다음 여행지를 위해 탑승 한 시각 14시 30분 편도 1차로 의 좁다란 차로를 따라 30여분 산등성이를 따라 가는 차창밖에는 몇 군데 산불이라도 난 듯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이곳 들이 화산(火山)이 타고 있는 활화산의 연기란다.
산등성이 저 멀리 10 여기의 풍력 발전(發電)기가 돌고 있는 곳을 보며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고 꼬불꼬불 산자락을 맴돌 듯 15시 20분경 1200 M 고지 능선에 다다르니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가이드의 안내(案內) 마이크는 전광판의 화산 관람 가부를 알리는 판을 보며 오케이란다. 이곳 아소 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이다. 아소 산의 면적은 380㎢로 동서 18㎞, 남북24㎞, 둘레 128㎞이다. 아소의 폭발은 3천 만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카다케, 다카다케, 네코다케, 에보시다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에도 계속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현재에도 높이 1,328㎞, 폭1.1㎞, 깊이 100㎞의 나카다케는 용암을 내뿜고 있어 살아 있는 아소 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아소 산 정상까지는 1959년 세계 최초로 활화산에 설치된 91인승 대형 로프웨이로 올라갈 수 있으며 평소에는 15-20분 간격으로 성수기에는 6-15분 간격으로 운행 되며, 높이 108m의 정상까지 약 4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화산활동이 심상치 않을 때는 관광명소(觀光名所) 는 수시로 변하는 일기와 바람의 방향 에 따라 관광을 허락도 하고 전광판에 NO라고 써 이으면 아쉽게도 이곳 주차장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 불 카를 타는 곳은 불과 100여M 15시 40분에 밀리지 않는 순서 따라 케이 불 카를 타기전이며 이곳 케이 불 카는 1958년 세계 최초로 활화산에 설치하였으며 이곳 주차장에서화산굴 入口 앞까지 높이 108 M을 4분 만에 연결하는 91 인승 대형 케이 불 카 로 평소에는 15~20분 간격으로 성수기에는 6~15 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최근까지 폭발했든 이곳 아소 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이다. 면적은 380 평방km동서18km남북24km 둘레가 128평방km로 이루 어 저 3천만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어든 대 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로프웨이 정상에 내려 도보로 3분여 나무 가랫장 울타리가 관광객의 관망소로 대략 300여 m떨어진 거대한 분화구 속에 진청색 물 색깔 에 무럭무럭 피워 오르는 연기가 바람에 흔들려 뚜렷한 초점을 맞출 수 없는 분연 과 화산에서 풍기는 硫黃 냄새가 살아 풍기는 곳을 열심 희 카메라네 담고 흐린 듯 차거 운 기온변화에 그리 오래있고 싶지 않은 듯 폭발하고 굳어진 분 능지능선을 따라 설치된 등반길을 따라 15~20여분 걸어서 내려오는 길가에는 붉 으스름한 화산 석과 이따금 듬성듬성 키 낮은 이름 모른 풀포기 나뭇가지를 보면서 주차장(駐車場)에 가차 워 와서야 눈에 띄는 철쭉 군락이 쓸쓸한 돌밭을 감싸주고 고산(高山) 능성이의 차가움이 몸에 와 느껴 저 우리일행은 누가 말 안 해도 모두가 버스에 탑승했고 우리일행을 태운 버스는 다시 왔 든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올라 올 때 뚜렷하지 않는 아소 산 의 신 이 수확한 쌀을 쌓아 두었다는 “고 메 즈 가” 언덕 표고 높이 954m에 위치한 주위의 언덕이 목초로 덮여 아름다운 부채꼴 형태의 동쪽의 산을 내려다보며 17시 경에 도착 한곳은 오늘밤우리의 숙박 지며 온천(溫泉)욕을 할 수 있는 해발 550m에 자리한 곳 멀리서보면 에스키모의 집을 연상 하게하는 돔형 막사가 즐비하게 위치하고 3층 정도 조금 큰 건물과 요란스런 장식전구와 주차장이 있는 아소 온천(阿蘇溫泉) 관광지 저마다 관광가방을 끌고 안으로 들어서니 案內人과 가이드의 日本어 로 주고 받드니 건물 밖 돔 막사 앞에서 배정된 숙소인 돔 현 막사를 안내받아 바로 앞에 대기 중인 25인승의 두 대의 셔 틀 버스에 나누어 타고 3~4분후 도착한 B단지 우리부부가 투숙할 292호이다.
출입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가니 3개 의 싱글 침대가 가지런 희 놓여있고 탁자며 TV,쇼 파 그리 고 작지만 샤워실과 화장실 까지 딸려있는 호텔과 다를 바 없는 시설 이였고 우리 일행이 너도나도 웃 움을 자아낸 것은 다음 스 케 줄에 있는 온천욕을 하기위해 숙소에 준비된 일본식(日本式) 까 운 만을 입고 셔틀버스를 타고 우리가 처음 내려 안내받은 건물에 있는 곳으로 오라하니 너도 나도 없이 처음대하는 까 운 걸이에 저마다 속옷을 입은 사람 안내대로 입은 사람 서로가 웃음을 자아내며 순회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온천에 들르니 뜨거운 열기와 색다른 여러 개의 노천탕 뜨거운 40여도정도의 유황냄새가 싫지 않는 이국에서나 처음 만나본 특이한 온천(溫泉)욕에 1시간 30여분을 즐기고 온천탕에 연결된 건물 2층의 뷔폐 식당에 서 가지 수많은 저녁식사를 즐기고 20시가 다되어 우린서로 숙소로 돌아가는데 한사코 온천욕을 더하자는 집사람의 요청 따라 한 시간 30분을 약속으로 서로 다른 탕을 찾아 들어갔고 저녁 전에도 그랬지만 이곳 온천탕에 내부관리(온도점검/내부정리 하는 남탕에 상관없이 마스크만을 쓴 일본아가시가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낮 설은 풍경은 우리일행의 여담거리였다.
약속된 시간(時間)내에 샤워를 끝내고 대기실에 이곳저곳을 돌다보니 한쪽에 즐비한 전동(電動)의자 안마기가 여러 대 놓여 실험삼아 투입구에 100엔을 너 의니 조작 버튼 따라 시원스런 안마에 주물음이 더 없이 좋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日本 하면 전자제품의 선두주자(先頭走者)에 더욱이 의자형 안마기 하면 세계적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때문이기도 한다.
잠시 후 성희 친구 부인과 함께한 집사람 모두 만족을 연발하며 두 차래 30여분을 즐기며 300엔 으로 구입한 시원한 생맥주 또한 샤워후의 속 풀이랄까? 피로와 갈증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 tu틀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 일본여행지의 첫날밤도 하루 觀光의 피로 속에 잠이 든 것이다.

2007년 02월 27일 (여행 세 째 날) 火曜日

돔 막사의 하룻밤도 06時 의 모닝콜에 기상을 하여 하루 여행 의 시작을 위해여장을 준비하고 여행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하늘빛도 아닌데 밖에는 빗방울이 염려 할 정도 는 아닌 듯싶게 비가 나리고 있다.
07시경 순회(巡廻)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어제 저녁을 먹었든 식당으로 모여 뷔폐식 조반으로 식사를 하고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이동하면 개 이는 날씨란다. 주차장에서 보는 저 멀리 산언덕에는 희연 화산연기가 이색적으로 피어오름을 보면서 08시경 우리일행은 호텔앞 주차장에 대기한 버스에 각자의 가방을 화물칸에 넣어두고 해발 500여m의 아소 온천 숙박 지를 뒤로하고 좌우에 전개되는 우리나라 한 단지(약900평) 보다는 절반정도 보이지만 틀에 박희지 않는 대체로 깨끔하게 정비된 논밭 전경을 접하면서 좌측의 먼 산 중턱을 끼고 뛰를 두른 듯 안개처럼 화산연기가 감싸 도는 전경을 보면서 마주 오는 큰 차량 들이 스칠 때마다 위험하게만 느껴지는 꼬불꼬불 곡예 산길을 따라 가끔씩 자위대의 군용 차량 과 관광버스만이 이따금 스칠 뿐 아무리 달리고 주위를 살펴도 날짐승이나 들짐승 그렇다고 양떼나 염소도 있는 것이 아닌 계속되는 草原의 능지 나무숲은 거의 없고 초원 같은 능지를 덮어 도는 산길 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안내가이드의 유모어중 에는 “남자(男子) 의 성(性) 과 불(火)” 에 빗대는 유모 어 을 옮기자면
10대를 번개 불에 빗대는 것은 언제 일어났다 꺼진지 모른다./ 20 대는 성냥불: 문지르기만 하면 불이 붙기 때문이며 / 30 대는 장작 불: 화력 이세기 때문이며 / 40대는 화롯불: 뒤적거릴수록 오래 탄다. / 50 대 : 담배 불-빨아야 잘 타기 때문이며 / 60 대 :촛불-불기만 해도 꺼진다. / 70 대 : 반딧불-불도 아닌 것이 타지도 않는다. 라는 끼 있는 유모 어에 앞좌석의 사모님들의 배꼽 잡는 웃음 속에 흥이라도 돋은 냥 이어지는 “ 여자(女子)의 성(性)과 과실(果實)” 에 비유하는 내용을 옮기 자면 / 10 대 : 호 도-까기도 힘들고 먹을 것도 없다. / 20 대 :밤 -구어서 먹고 삶아서 먹고 생으로도 먹는다. /30 대 : 귤-어디서나 까기도 먹기도 쉽다./ 40 대 : 수박 -칼 만대면 저절로 벌어진다./ 50대 : 석류-저절로 벌어 저 보기는 좋으나 신맛에 먹기 힘들다./ 60대 : 모과 -물 도 없고 맛도 없는 것이 떨떠름 하기만하다./ 70 대 : 토마토 - 과일도 아닌 것이 과일 인척한다.

유모 어 감각이 뛰어난 타고난 가이드의 체질이라고 할까 꼬불꼬불 차도의 산길은 꼭 제주도 한라산 횡단 길이초목만 널려있는 초원을 가는 냥 착각 스 런 2시간 10분 을 달려 저 멀리 아래쪽 산중턱에 한눈에 들어오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며 열대림 사이로 온천 연기가 곳곳에 피어오르는 이곳이 온천의 도시 오이타 현 벳 부 시 인구는 12만 6,854명(2003년)이다.


인구밀도는 1,013.78명/㎢이다. 시가지는 화산성 선상지(火山性扇狀地)와 그 기슭에 이어지는 충적지에 전개되며, 주위는 쓰루미산[鶴見山] ·다카사키산[高崎山] 등 화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시(市)의 남쪽에 벳푸 등 4개, 북쪽에 가메카와[龜川] 등 4개의 온천이 있어, 이른바 벳푸팔탕[別府八湯]이라는 온천고을을 이룬다. 이들 중, 벳푸온천이 천량(泉量)·교통·지형 등 조건이 좋아 가장 번창하기 때문에 온천고을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다. 이곳 온천수는 2848개소 로 세계 제일이며 용출량(用出量)은 1일 13만 6571 칼로리로 日本 에서도 제일 유명 한 곳이란다. 벳 부 온천은 “벳 부”묘 반“ 하마와키”시바세키“ 칸나와” 칸카이지“호리타” 가메가와“등 8개의 온천(溫泉) 으로 이루어 저 있으나 우리의 목적지는 우미(海)지옥 혹은 바다지옥 으로 황산 철 때문에 바다색 과 같은 청색 푸른 바다 (우미:海)지옥 깊이는 120 m에 98도c나 되는 열탕으로 5분 만에 달걀이 반숙되어 함께 동행 한 전주에 최 사장의 배려로 근처 가까운 곳에 20여분의 足浴(족 욕) 체험 시간에는 반숙 달걀을 먹어보기도 한 時間이였다.
바다지옥의 관광을 끝내고 10여분 벳부 의 시내를 이동하여 도착 한 시각 11시 40분경 한국(韓國)인이 운영한다는 면세점 코너 의 주차장에 주차 후 모두 면세점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 의 쇼핑 점 에나 온 듯 점원들은 한국의 아가씨들과 아르바이트 한다는 유학생이 대부분이여서 어려움 없는 쇼핑을 할 수가 있었고 태평양 전쟁 시세계 에서도 유일하게 인간 생체 실험으로 의약품 발달이 앞서 간다는 가이드 의 안내 탓인지 일행모두가 의약품 코너가 성황 이였다.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 전자제품코너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광주에 진월동이 집이며 양 성식 친구의 아들 현수의 친구 장흥이 고향이라는 김 민 수 라는 유학생을 만나 더 많은 이야기도 논하고 내가 구하려 했든 일본주화(日本 鑄貨) 수집에 숙제를 풀고 12시 20분경 저마다 쇼핑을 끝내고 차량에 탑승 하고 이동한 것은 10여 분후 수많은 뷔폐 음식점 이제는 우리일행도 뷔 폐 음식에 능동적으로 접하면서 가이드가 써 비스로 전해주는 맥주잔에 더욱 즐거운 점심시간으로 이어졌다.
배불리 먹은 점심시간도 14시 경 다시 차량에 올라 10여분을 바닷가 쪽으로 도로를 따라 달리더니 바닷가에 그리 멀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큰 도로위로 지나는 육교를 건너 그리 멀지 않는 산중턱에 자리한 대분시(大分市) 서쪽 해발 628 m 에 자리한 약1200 여 마리의 일본산 야생 원숭이 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관찰코스로 만들어 놓은 고기산 自然 動物園 (자연 동물원)벳푸시[別府市]와 오이타시[大分市] 경계에 있는 다카사키야마산[高崎山, 해발고도 628m]에 있다. 이곳에서는 에도시대부터 야생 원숭이가 살았다고 하며, 공원은 1952년 11월 3월에 개장하였다. 이곳에서는 원숭이 약 2,000마리가 우두머리의 통솔 하에 약 500 ~ 800마리씩 세 무리로 나뉘어 교대로 산기슭에 있는 절의 경내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등, 나름의 집단 사회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토대로 동물에게도 사회관계나 구조가 있다는 연구 발표가 잇달아 나와서 이곳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관람료를 지불하고 입구에 들어선 우리에게 가이드의 주지사항은 첫째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 .둘째: 만지지 말 것, 셋째: 놀리지 말 것, 넷째: 놀리지 말 것 이라 는 주의사항에 이들 원숭이 들은 두개의 무리로 나누 어 저 매일 지정된 원숭이 집합장소에 모습을 나타내는 야생원숭이로 서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가장 큰 원숭이 무리부터 먼저 집합장소에 모인 단다.
현지 사육사인 日本人의 안내에 따라 먹이를 주면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 한 모성애강한 원숭이는 자기가 낳은 원숭이 세끼가 죽었는데도 1년 6개월을 품에 끼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
원숭이 관람을 끝내고 주차장에 내려는 신깐센 전차선로 밑을 지나 주차장에 버스에 탑승한 시각 15시 30 분 다음 이동지로 가는 차창밖에 오랜만에 내가 궁금 하게하는 바닷가 3~4명의 낚시꾼을 보면 서 案內 자에게 혹시 낚시 재료를 구할 수 있느냐하니 얼마 전 에도 어느觀光객이 찾아 알아 보 아 어도 찾지를 못 했다 는 것이다.
20여분도 채 못 달려 각종 피부병이나 아토피 피부병 무좀 류 마티스 . 근 육 통.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는 “유노하나“ 유황 재배지 재배라기보다는 유황을 채취 한다고 해야 오를까 ? 지하에서 올라오는 독특하고 강력한 코 깃을 매섭게 하는 분출 硫黃을 김처럼 서리 게 하여 채취하는 곳으로 많은 유황관련 관광 상품을 진열 판매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으니 현혹 되지 말라는 가이드의 안내 에 따라 어느 누구도 유황제품은 관람으로 끝내고 10여분 만에 다시 버스에 오르려니 또다시 빗방울이 내린다.
변덕처럼 달라진 기후를 보며 우리가 16시경 에 다다른 오늘의 마지막 관광코스는 “ 희카시야” 폭포 관광을 위 한 질주는 차창밖에 이여 지는 전경은 농촌 들녘을 끼고 가는 좁다란 포장도로를 따라 눈앞에 산이 가로 막고 있는 듯한 산골로 접어들기를 10여분 그리 넓지 않는 한산한 주차장 에는 조그마한 매표소 건물 앞에 안내판과 덜렁하니 자판기 두어 대가 설치되어있고 차내에서 그토록 자랑삼아 애기하든 老 할머님 이 담요로 하반신을 감 싼 채 앉아 웃음을 잃지 않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였고 주차장에서 내려 깨끗하고 맑은 산골 물을 따라 골짜기로 오르니 80 여m 의 높은 암 벽 위에서 떨어지는 그리 크지 않는 물주기의 폭포 너무 물이 차가워 물고기한 마리 살지 못한다는 폭포수 의 낙차를 배경삼아사진촬영을 하고는 왔든 길을 따라 駐車場으로 내려 왔을 때는 시간이 늦어가는 탓일까 또 다른 관광객은 볼 수없는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이면 조금 아래 민가에 사신다는 노년의 할머니 관리를 받고 정부에서 생활비(生活費)를 받는다는 이 할머니도 오늘의 관람을 마감하고 집으로 들어가실 런지 ? 외롭게 홀로 남은 할머님께 부디 건강(健康) 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라는 우리 일행의 예의 밝은 인사를 올리고 탑승하니 우리를 태운 버스는 17시가 다되어서야 시내로 향한 이동(移動)이 시작 된지 30여분 산골을 돌아 나와 시내에 들어서니 어수선하지 않는 도로(道路)를 제법 큼직이 보이는 도시는 “낮은 산언덕과 강을 끼고 크고 작은 건물 학교 공업단지(工業 團地)등이 눈에 들어오고 이곳 역시 집단화된 납골당묘석 은 빼놓을 수 없는 전경 이였다.
저물어가는 어둠 속에 서서히 밝혀 저 오는 전등불과 시내 가로등(市內 街路燈)의 밝은 불빛을 야경삼아 1시간 30 여분을 달려 오늘 夕食은 일본 전통 음식을 맛보기위한 일식당(日食堂) 으로 안내 되어 한쪽 룸에 우리일행만을 위한 식사 자리가 준비(準備) 되어있었고 우리 일행 이 자리를 앉자 말자 죠바 의 아까시가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 와 맵고 짭짤한 입맛에 익숙한 우리 일행이 역시 일본 식은 별로인 듯 그러나 한번쯤은 먹어보는 현지 식 이였기에 불평 없는 식사(食事)였 의나 조그마한 따꾸앙 쪼가리 몇 개만 추가해도 가산 요금이 나오는 일본 식을 체험하며 체5~10분여 만에 이동한 숙소는 단체 일반 투숙에 일 천오백 엔을 받는 꾀 높은 숙박료에 잘된 5성급 특급 호텔 인 RIHGA호텔 23층의 높은 건물에 신간센 열차 풀레트 홈과 연결된 이호텔 이층 로비에서 우리일행이 방 배정 카드를 받아보니 우리 일행이 배정받은14층의1401 호부터였고 모두가 배정 받은 호실에 여장을 풀고 마지막 日本 의 밤을 정리하자는 생각 속에 형 년 친구가 투숙한 1410 호에 모여 안주 대신 제대로 끓여 지지도 않는 한국의 컵라면 두어 개에 우리소주를 돌리며 담소를 나누다 별 뾰족한 묘안이 없어 20 여분 후 각자의 객실로 이동 하려다. 나를 포함 몇 친구의 의견 끝에 재 희/오환/동칠/석동 5명은 가벼운 차림 의로 호텔 밖을 나갔고 누구나 이곳에 낮 설은 우리는 그리 멀지 않고 호텔과 연결되어있는 신간센 열차역사로 네온불빛야경을 관망삼아 돌아나가다 골목의 선술집이라도 들려 보자는 의견 끝에 점포와 술집들이 보이는 골목 의로 들어갔었고 벌써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인 골목에서 나이어린 젊은이가 주인 인 듯한 선술집 비좁은 공간에 우리가 앉아야할 의자도 없는 말 그대로의 선술집 이란다.
서투른 日本語 영어 등까지 동원하여 주인과 뜻이 전달되어 일본의 정통 주 우리나라 종이컵 크기의 유리컵 한잔에 300엔 하는 정종 한잔씩을 주문하고 별도의 아부래 기 같은 한점 집고나면 부족한120엔의 안주에 입을 맞추고 우리는 다시거리로 나와 행여 유익한 꺼리가 없을까 생각하다 24시 마트를 들려 내가 남은 200엔으로 현지 술2병과 쏘시지를 사들고 제법 쌀쌀한 밤길을 돌아 인적이 드물어가는 신간센 歷史驛을 지나 호텔1410호에 벨을 눌러도 대답 이 없어 우린한쪽 코너 호텔 물치 창고 에 마트에서 구입한 술과 안주로2~30여분 담소를 나누고 각자 침실로 돌아가는 RIHGA HOTTL 에서의 이틀째의 밤은 새벽 1시30분경 이였다.
2007년 2월 28 일 (여 행 네 째 날) 수 요 일
모닝콜 06:00평소의 습관 탓에 다섯 시가 조금 못되어 잠이 깨어 버릇처럼 화장실고 샤워를 하고 는 낙서처럼 기록한 여행기(旅行記)를 준비 하느라 아침 시간이 아쉬움 속에 호텔에서 제공되는 뷔페식 조반을 들고 오늘이 여행스케줄의 마지막 행선을 위한 08시경 호텔 2층 로비에 다모였고 그래도 즐거운 여행의 표시인지 다시 왔으면 하는 농담어린 이애 기도 흘러나와 회장인 나로써 그리고 이여행의 안내자(案內者)로 써 다소는 안도함이 앞 설뿐이다. 20여 분후 고속도로에 접어 들었 의나 한 결 같이 서두르지 않는 버스기사 아니 주행하는 모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추월을 서두르는 것을 보기 힘든 우리 국민이 많이 본받아야할 점이라고나 할까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논 밭 산야 속으로 지나는 송전(送電) 철탑 사이로 집단화된 촌락들이 여유롭게 전개되는 차창을 따라 1시간 10여분“복강”톨게이트를 들어서니 3일전 일본여행의 첫 기착지였든 바다와 선박 들이 늘어선 후쿠오카 의 하카타 항에 정박해있는 카멜리아호 가이드의 안내하는 시선 에 들어온다.
9시35분경 항구에 서 그리 멀지 않는 마지막 관광지(觀光地) “오호리 공원” 은후쿠오카성(城)의 해자(垓子 : 성 주위에 둘러 판 못)를 이용하여 만든 공원이다. 호수에는 작은 섬이 떠 있고, 이 섬과 호숫가를 잇는 3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것은 1927년 중국의 시후[西湖]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호숫가에 일본 국보인 간노와노나노코쿠오[漢委奴國王]를 전시하고 있는 후쿠오카시미술관과 일본식 정원이 있고, 동쪽 옆 후쿠오카성터에는 헤이와다이구장, 쇼와도리 건너편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시민공원이 있다.
공원이래야 큰 호수 가운데 섬처럼 공원이 있고 오리 유람선이 차거 운 바람 속에 손님을 기다리듯 움집 해 있고 많지 않는 오리와 갈매기가 노니는 호수를 걸어 나가 건너에 대기한 차량에 탑승 아쉬운 日程에 써 비스로 한곳을 더 보여드린다는후 쿠호카 타워는 후쿠오카 워터프론트지구 시사이드모모치의 중심부에 있으며, 1989년에 건립하였다. 높이 234m로 일본에서 해변에 세워진 타워 가운데 가장 높으며, 외관은 약 8,000장의 반투명 거울로 덮여 있다. 타워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역시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건물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전망대는 지상으로부터 116m 지점과 123m 지점에 있으며 워터프론트지구, 하카타만(灣)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유리벽 위에는 후쿠오카 시내 주요 건물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안내하는 대 이곳은 신도심 매립지로 지진 때문에 고층건물이 많지 않는 현실 때문에 더욱 명물 인 듯싶다.
고층건물을 배경삼아 단체 촬영도 하고 좀 체로 느끼지 못한 차거 운 바람에 일행들은 볼 것 없는 듯 차량(車輛)의로 이동하고 부두까지 그리 멀지 않는 차창밖에는 유명한 잘 호텔이며 지붕이 시커먼 돔구장이 유난스럽다. 일정에 따라 우리일행이 귀국을 위란 카멜 리 아 호에 수속을 밟고 탑승을 하고나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우리일행이 배정받은 룸은 다소는 적지만은 그래도 우리일행만 함께할 수 있는 307호를 택했고 하 카 다 항을 뒤로 하고 떠나는 2만 2천 톤급 “카멜리아호”는 넓은 태평양을 향진했고 태풍 예보나 기상 특보 조차 알지 못한 항해길 은 지난 출국 시와는 달리 무척 흔들림이 심했고 멀미에 약한 대다수의 여행객들이 구토와 멀미에 혼미 스런 시간이 연속 되었고 멀미를 해보지 않는 나에게도 대마도 옆을 지나는 시각에 행여 대마도를 볼까하여 선실 5층 갑판 대에 나가 있노라니 희뿌연 시야에 섬 자락만 보일뿐 속이 다소 매스꺼워 짐을 느껴 객실에 들어와 누어있는 것이 안정 스러 워 한 시간 여 남짓 당초 18:00에 釜山항 국제여객(國際旅客) 터미널에 도착하려든 여객선은 20여분 늦은 18:20분경 到着하여 40여분이 다되어서야 관광객(觀光客)들의 입국수속에 세관 검사 등을 끝내고 터미널 待合室(대합실)로 나오니 光州로 함께 行動(행동)해야 하는 羅州 文平(문 평) 의 관광객(觀光客)과 협의가 되지 않아 우리 37회의 부산(釜山)자갈치 시장에서의 저녁식사가 무산되어 서울과 전라도(全羅道)로 헤어 저야 하는 시간타임에 맞추어 형 년 총무 의 주문에 온 횟감을 서울과 전라도로 나누어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조이트래불 의 소리투어 (鳳凰욱 곡 故 최 길 언 씨 의막내 아들/T:018-621-8770)최 금호 기사의 관광버스에 탑승하였고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두어 시간 섬진강 휴 계소에서야 준비한 횟감을 안주삼아 간단한 휴 계소 회장국의로 저녁을 때우고 23시가 조금 넘어서 광주역(光州驛) 에서 3박 4일의 아쉬운 인사로 모든 일정을 마치며 망각의 시간을 다시한번 되 집어 보는데 조금이라 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행기(旅行記)를 나열 하여 아오나 부족한 문장력을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 항상 즐거움과 건강이 그리고 이번여행을 함께해주신 회원 여러분의 家庭(가정) 에 幸運(행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03월 日本 북큐슈 溫泉 旅行記: 鄭 燦 悅 씀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북경 여행기  (0) 2013.06.09
중국 곤명(운남성)석림, 구향동굴  (0) 2013.06.09